[박근종 칼럼] 2030 이공계 70%가 해외 이직 고려, 인재 떠나면 ‘AI 3강’은 백일몽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11-07 15: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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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국내 이공계 인력 10명 중 4명은 외국으로 떠날 의향이 있거나 실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30대는 10명 중 7명이 해외 이직을 원한다고 했다. 과학기술 인재 유출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과학기술(이공계) 분야의 인재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첨단 제조 등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축이자 국가 경쟁력의 전략적 기반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기술 역량은 경제와 안보를 떠받치는 소중한 자산으로서, 외국 인력 도입이나 자본 투입만으로는 이를 대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최상위권 인재의 상당수가 의료 분야로 진학 의대 쏠림을 하고 있으며, 이공계를 선택한 인재들은 더 나은 연구 환경과 경력 기회를 찾아 해외로 진출하는 인재 유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3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 의하면,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국내 대학·연구소·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이공계 인력 국내외 이공계 인력 2,7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 실태와 결정요인을 실증분석하고 정책적 대응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 1,916명 중 42.9%가 “향후 3년 내 외국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5.9%는 외국 이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했거나 현재 인터뷰 등을 진행 중이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20~30대에서 이 수치가 62%로 뛰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과학기술 미래 두뇌의 ‘탈한국’ 행렬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연령대로 살펴보면 20대(72.4%)·30대(61.1%)·40대(44.3%) 순으로 해외 이직 의향이 강했고, 분야별로는 바이오·제약·의료기기나 IT·소프트웨어·통신뿐 아니라 우리가 기술 우위에 있는 조선·플랜트·에너지 분야마저 종사자의 40% 이상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공계 인력이 해외 이직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봉 등 금전적 요인’이 무려 66.7%이었다. 연구생태계 및 네트워크(61.1%)와 경력 기회 보장(48.8%)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열악한 처우와 부족한 일자리다. 소득이나 승진 기회보다 ‘고용 안정성’이 나아진다면 해외 이직 확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 사정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연구 인력 등을 줄이는 현실에서, 해외 이직은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공계 인력 유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대학의 우수한 교수들이 해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퇴직 교수까지 중국 등으로 스카우트되고 있다. 해외 유학 등을 떠난 실력 있는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숱하기 짝이 없다. 매년 1만 명가량의 이공계 석·박사가 한국을 떠난다는 통계도 있다. 그야말로 ‘탈(脫) 한국’ 러시(Lush)가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공계 인재의 ‘한국 탈출’이 더 가팔라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이제 과학기술 인재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의대 열풍에 이공계 진학이 뒷전에 밀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연구생태계마저 훼손·붕괴될 위기에 봉착했다. 해외 대학이나 기업으로 떠나는 인재 유출을 못 막으면 정부가 100조 원을 쏟아붓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거 확보한다 해도 ‘AI 3강 도약’은 실현 불가능한 헛된 공상인 백일몽(白日夢 │ 밝은 대낮에 꾸는 꿈)으로 그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미 관세 협상 결과 3,500억 달러 대미(對美) 투자가 본격화하고 기반 시설 이전도 늘어나면, 국내에선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인재 유출과 연구·개발비 축소, 일자리 축소가 더욱 가속화(加速化)할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가 지난 10월 31일 한국에 26만 장 이상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GPU는 인공지능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대규모 연산을 담당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칩으로, CPU(중앙처리장치)가 복잡한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는 반면 GPU는 단순하지만, 많은 양의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엔비디아는 이날 최신 AI칩 ‘블랙웰(Blackwell)’을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에 각각 5만 장, 네이버클라우드에 6만 장 등 총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뒤 이미 1년 치 생산량이 완판됐을 정도로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의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이로써 단숨에 AI용 GPU 보유 세계 3위권에 올라설 전망이어서 일약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3대 AI 인프라 강국에 오르게 됐다.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Jensen Huang │ 黃仁勳)’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 블랙웰을 집중 공급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은 소프트웨어·제조·AI 3가지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AI 발전 단계는 ▷‘언어·인지 AI’ ▷‘추론 자율 AI’▷‘물리 AI’의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기반한 ‘언어·인지 AI’를 거쳐, 2단계로 추론과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추론 자율 AI’, 3단계는 현실 공간과 역학을 이해하고 로봇·제조 라인 등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물리 AI’로 구분한다. 현재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엔비디아는 반도체와 제조업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을 ‘물리 AI’를 처음 실현할 최적의 무대로 낙점한 것이다. 정부는 5만 장 GPU를 ‘소버린(Sovereign │ 주권) AI’ 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과 SK는 AI 반도체 팩토리 구축에 나서고, 현대차는 자율주행·로보틱스 등 직접 산업 응용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는 공공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AI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AI 허브 클라우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금은 AI를 빼놓고는 미래를 이야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가 굳어진 데다 ‘AI 3대 강국’에 들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정작 관련 인재가 없다면 GPU나 제조업 기반만으로 ‘물리 AI’ 선도국이 될 리는 만무하다. 우수한 인적 자원은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음은 분명하다. 과학기술 인력은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끈 든든한 기둥이었다. 하지만 이과 계열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과 ‘해외 유출’이 맞물리면서 이공계 인재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은 인구당 연구개발 인력에서 선진국 최상위 수준이다. 하지만 이과 전공자 ‘의대 쏠림’ 현상이 극심하고, 남은 이공계 인재들은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27년까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나노 등 신기술 분야에서만 6만 명 이상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인재 적자국’이라는 치욕적 꼬리표까지 붙을 정도로 인재난은 심각하다.

모처럼 어렵게 맞이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당장 AI 인재 확보에 나서야만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가 간 기술 경쟁에서 우수 인재 확보는 국가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다. 중국의 ‘천인계획’처럼 해외 인재의 유턴을 유도하기까지는 쉽지 않더라도, 국내 우수 인력의 유출만큼은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와 격차가 큰 보상 체계부터 개선해야만 한다. 우선 떠나려는 인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과감한 성과 중심의 급여체계 도입과 각종 지원 강화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정부 확보분 블랙웰 5만 장을 스타트업과 대학 등에 개방해 인재 훈련 확대와 관련 장학제도 확충 등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미 해외로 떠난 인재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복귀 인재 프로그램도 서둘러 마련하고, 해외 인재에 대해 겸임이나 원격 근무, 정년 연장 등의 인센티브(Incentive) 부여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정부 주도의 ‘나눠 먹기식’ 연구비 배분 구조를 과감히 혁신하고, 이공계 인력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가며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이공계 인력이 국내에서 기회를 찾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과 과학기술 생태계를 하루빨리 서둘러 세워야만 한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금전적 보상 체계 혁신, 연구·개발(R&D) 투자 실효성 강화, 기술창업 기반 확충, 혁신 생태계 확장 등을 위해서는 정부와 여야, 산학연을 아우른 과학기술계가 범국가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은 기술 개발·산업 경쟁력 확보를 통해 돌파할 수밖에 없고 그 기반은 인재 육성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호기인 ‘골든타임(Golden time)’도 결단코 길지 않음을 직시하고, 그나마 키운 인재들도 해외로 눈길 돌리는 위기 상황임을 명심하고 국가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첨단 GPU가 대량으로 들어온들 가동할 전기가 부족하고 이를 다루는 인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각별 유념하고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AI 인프라 확대와 인재 확보, 규제 완화의 길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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